그렇게 한주간 강세가 준 옷들 돌아가며 입고 찝찝한 마음으로 잘 지냄 금요일이 되고, 내일을 걱정하며 퇴근준비를 하는데 강세가 오늘 시간 되면 같이 저녁 먹자고 부름. 내일 금수를 만나야 해서 고민함. 그러다 저번 일이 생각나서

“제가 저번 주에 실례를 범해서….”

라고 말함. 은 괜찮아. 라고 돌아옴. 어쩔 수 없이 저녁 먹으러 가고 도수가 좀 낮은 화이트 와인을 시킴.

“네가 술이 약한 줄은 몰랐네. 앞으로 참고할게.”

남수도 이 정도는 괜찮으니까 마시는데.. 도수가 낮긴 해도 저번에 훅 간 게 있어서 경계하면서 마시는데

“내일 뭐해?”

강세가 잔에 또 따라주며 물음. 저번에 친구 얘기했을 때 반응이 안 좋았지... 잠깐 대답거리 좀 찾으려고 따라준 술을 마심.

“요즘 피곤했어서 집에서 몰아서 잘 생각입니다.”

진짜 얄팍한 수작인데 포도주 한 모금하면서 떠오르는 게 그다지 없었음. 저번처럼 일 얘기해도 안 되고. 강세가 흐응- 고개 끄덕이면서

“하긴, 건강 중요하지.”

의외로 쉽게 넘어감. 진짜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 넘긴 것 같아서 거짓말 티 안 나게 자연스레 시선 돌리면서 와인 한 모금함. 이런 식으로 한 3잔까지는 머리가 어지럽지도 않으니까 적당히 페이스 맞추면서 마시는데 평소보다 식사시간이 길어짐. 아.. 내일 선배님(둘다 계급은 경위인데 금수가 몇 년 빠름) 만나는데.. 점점 초조해짐. 지금 딱 한 모금 남아있고 그거 마시고 좀 취기 오르는 척 하는데, 강세가 와인병 들고서는

“이 와인 맛있지.”

자기 잔에 따르면서

“혼자 있을 때, 가볍게 마시기 좋더라고.”

테이블 위에 놓고 남수 쪽에 슥 밀음. 남수가 지금 좀 취기 오른다고 거부하니

“마셔.”

낮은 음성에 다시 긴장감에 휩싸이고. 남수가 눈치 보다가 한 모금 넘기니까 그제야 미소 지으면서

“혼자 마시긴 좋은데, 그래도 혼자 마시는 건 외로워.”

그리곤 남수 빈잔 가져가 쥐고 남수 쪽으로 비스듬히 함.

“하하, 그렇죠...”

남수가 웃으며 강세에게 따라 줌. 그렇게 한두 잔 더 하고 ..기억이 끊김. 눈이 팟 떠져서 멍한 정신에서도 쎄함. 몇 번 천장을 보면서 눈 깜빡이다 스윽 시선을 밑으로... 그리고 쎄한 예감은 왜 이렇게 딱딱 맞는 건지 역시 강세 방이었음.

“아...”

탄식하며 두 손으로 얼굴 가림. 그러다 한숨 푹 쉬고 팔 뻗어서 핸드폰 짚고 지금 몇 신가 확인하는데 벌써 12시. 약속은 2시. 어떡하지... 고민하다 급한 사정이 생겨서 못 만날 것 같다고 문자 보냄. 사실 섹스하기 싫은 것도 있고. 핸드폰 꼭 쥐고 패닉 상태로 있는데, 곧 답장이 옴.

[늦게라도 와.]

진짜 만나기 싫지만.. 그래 정보는 줘야지.. 알겠다고 시간 될 것 같으면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답장 보냄. 그리고 이제 이 집에서 어떻게 나갈 것인가, 고민하다 강세가 씻고 있을 때 나가자 는 생각이 들어 바로 옷 챙겨 입음. 셔츠 단추 다 꿰고 바지 지퍼 올리면서 문 살짝 엶. 다행히 안 보임. 자켓 팔에 걸치고 문으로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 달칵 소리가 들리고, 남수가 자동문 버튼 눌러서 스윽 띠리리-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뭐해?”

뒤에서 강세 목소리가 들림. 남수가 침 삼키고 느리게 뒤돎. 강세가 물기도 덜 말린 채로 나와서 고개 삐딱하게 남수 보고 있음. 머리카락에서 물기 떨어져서 로브 어깨부분 젖어감.

“아…, 제가 또 실례해서.. 사장님 씻으실 때 조용히 가려고…. 죄송합니다.. 제가 조절하면서 마셨어야 했는데….”

두서없이 말함. 강세가 말없이 남수 뚫어져라 보고, 정적동안 문은 다시 잠김. 남수가 고개 약간 숙여서 강세 눈치 보다가, 신발 벗고 다시 안으로 들어옴. 강세가 목을 옆으로 뚝, 뚝, 한 번씩 꺾어서 풀음.

“...일단 씻어.”

턱으로 살짝 욕실 가리킴. 남수는 다시 허리 숙여 사과하고 들어감. 심기 거슬리면 안 되는데.. 진짜 모르겠는 인물이다.. 이런저런 생각하고 씻고나옴. 은 자기 옷 사라져있어서 당황함. 어떡하지 두리번거리면서 수건이라도 걸칠까 생각하는데 옆에 로브 걸려있음. 이거라도 입자... 리본 꽉 묶고 나감.

강세가 3인용 소파에 중앙에 다리 꼬고 앉아있음. 남수가 머뭇거리자 고갯짓으로 자기 왼쪽 가리킴. 천천히 걸어가서 못 앉고 고개 푹 숙이고 손 모아서 강세 앞에 서있으니 강세가 검지로 다시 가리킴. 남수가 앉으니 물 마실 거냐고 묻는 듯 잔을 건넴. 괜찮다고 답하니 고개 두어 번 느릿하게 끄덕이고 자기가 마심. 잠시 정적이 이어지다

“네 옷은 빨았어.”

“네?”

“주머니에 있는 건 다 뺐으니까 걱정 말고.”

“아, 예, 감사합니다.”

순간 usb가 생각남. 겉보기엔 그냥 카드 같으니까 괜찮을 거야 모를 거야. 강세가 얼음만 남은 잔 돌리다 입에 하나 털어 넣음. 잠깐 녹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깨물음.

“남수야.”

어깨동무하듯 남수 어깨에 팔을 올림

“네.”

“앞으로도 잘하자.”

손에 힘줘 어깨를 꽉 잡고

“...네.”

남수의 대답에 힘을 풀고 살살 토닥임

“그래, 남수는 똑똑하니까 알아서 하겠지.”

어깨에서 팔 내리고, 다시 컵 들고, 얼음 하나 더 먹고 혀로 굴리면서 녹임. 그러다 눈을 감더니 갑자기 남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가까이 다가가 스르르 눈뜸.

“냄새 좋다.”

코와 볼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미소를 띄고 있음.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남수 굳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눈만 굴림. 남수가 아주 살짝 떨어지면서

“...저도 씻으면서 그 생각했는데. 사장님은 클렌징 폼도 좋은 거 쓰시나 봐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임. 강세가 그 미소 그대로 유지하며 남수 눈을 직시하다 스윽 떨어짐.

“내 거 냄새가 이렇게 좋은 줄은 나도 몰랐네.”

그리곤 마지막 얼음까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남. 잔 들고 부엌으로 가다가 뒤돌아보면서

“점심은 어떡할래?”

“괜찮습니다.”

“음…, 앞으로 괜찮다는 말을 못하게 할까봐.”

남수가 벌어진 입을 다물음. 강세가 빙긋 웃으며

“내가 먹고 싶어서 그래. 같이 먹자.”

“아.. 네..”

남수가 약간 긴장어린 표정으로 끄덕임

“그런데 괜찮다는 말을 그만 듣고 싶은 건 맞아.”

그리곤 부엌으로 가 잔을 헹구고, 다시 남수 보면서

“앞으로 괜찮다는 말은 다 내가 좋은 쪽으로 이해할 거야.”

장난스럽게 웃음. 남수는 이젠 거절 어떻게 하지 속으로는 고민하면서 하하... 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따라 웃음.

“속 괜찮아? 괜찮으면 팬케이크 하게.”

“아, 네, 괜찮, 아.”

“흠.”

“...좋습니다.”

강세가 팬케이크 굽고 남수는 앉아서 기다리는데, 방금 있었던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의식이 좀 돼서 밑이 허전한 게 느껴짐. 근데 식사자리인데 속옷 얘기하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가운 벌어지지 않게 하체 쪽 왼손으로 잡음. 강세가 플레이트 놓고 앉는데 남수 얼굴에 좀 난색이 비친 게 보여서

“왜? 냄새 역해?”

“아닙니다, 좋아요.”

벌어져 있는 두 천을 다리 사이에 끼워서 고정하고 포크랑 나이프로 잘라먹음. 맛있어서 잠시 기분 좋아짐. 은 갑자기 이따 약속 생각나서 다시 처지고. 금수 생각나니까 여러 생각이 물꼬를 틀어 이어짐.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노팬티로 보스랑 아점 먹으려고 경찰 됐나.. 이금수도 꼴 보기 싫다.. 내가 그렇게 아프다고 했는데.. 퇴사하고 싶다.. 표정이 엄청 우울해짐. 강세가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무슨 생각해?”

“...별 거 아닙니다.”

“...내가 10분 전에 앞으로도 잘하자고 했던 것 같은데.”

또 표정만 웃고 있지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음. 남수가 잠시 고민하다

“...속옷 입고 싶어서요..”

이 정도면 의심 안 하겠지.. 실제로도 그렇고... 남수가 민망해서 손 테이블 아래에 두고 고개 푹 숙임. 강세가 먹다가 ...아.

“잠시만 따라와 봐.”

자기 방문 앞에서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 이내 팬티 하나 들고 옴

“그거 새 거야.”

“...감사합니다...”

받아들은 남수가 화장실로 가려는데

“그냥 여기에서 입어.”

“...네?”

“남자끼리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남수는 강세가 남자랑도 잔다는 게 떠올라서 주저함. 근데 고집 부려서 가면 오히려 의심 살 것 같고. 한 번 호흡 하고 허리 숙여서 드로즈에 다리 하나씩 넣음. 올리다가 가운 때문에 불편하니까 벌리고 끝까지 올림. 움직여서 끈이 풀려 밴드까지 보이고. 남수는 아예 끈 풀었다가 다시 묶음.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음. 팬케이크 입에 넣으려는데 강세가

“어제도 느꼈지만, 몸이 좋네.”

남수 포크가 입 앞에서 멈춤

“아... 감사합니다...?”

“왜 의문형이야.”

강세가 큭큭댐. 내 몸을 본 건가 남수는 속으로 약간 패닉함.

“아니.. 안 그래도 일어났을 때 갈아입혀 있길래.. 왜 그러셨는지 알고 싶어서….”

일단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알기위해 질문함

“네가 불편해 하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강세에 남수는 쎄해짐. 아 이런 사람이지 싹을 잘라버리는

“하하..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웃고 넘어가지도 않는 식사를 꾸역꾸역 입에 넣어서 마침. 대접받았으니 남수가 설거지하는데 뒤에서 커피 마시던 강세가

“오늘 쉰다고 했지?”

“네.”

“흠-, 그럼 여기에서 쉬다가 월요일에 출근해도 되지 않아?”

“아….”

“왜? 별로야?”

남수가 대답을 못하자 남수에게 가까이 다가와

“네 옷도 다 여기에 있는데.”

남수가 설거지하던 손도 멈춤. 잠시 정적이 생김. 물소리만 쏴아아-

“아.. 그게.. 일개 회사원이.. 사장님 댁에서 오래 머무르는 건.. 예의가 아닌,”

“내가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이지.”

남수 말 끊고 말하는 강세에 남수는 입을 다물고 고개 숙여서 식기만 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남수 순간 멈칫. 크게 내색하진 않고 동공만 조금 커지고 숨 좀 들이킴. 아주 잠시만 그렇고 이내 조금 미소 지으며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남수 뚫어져라 보고 있던 강세가 대답에 고개 끄덕이면서 뒤돌고 테이블 쪽으로 걸어감

“하긴, 휴일에 상사와 있는 건 고역이지.”

아메리카노 한 번 홀짝이고

“데려다줄게.”

“괜찮은,”

“좋다고? 알았어.”

남수가 아... 탄식하고 입을 꾹 다물자, 강세가 장난스럽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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